서울 북촌 가회동 31번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한옥 호텔, ‘노스텔지어Nostelgia’에 대해 말해볼께
2022년부터 시작된 이곳, 기세가 장난 아냐. 약 3년 만에 북촌의 한옥 여섯 채를 숙박 공간으로 바꿨거든. 최근 1년간 한옥 숙박객은 2000여 명. 그중 80%는 외국인이래! 심지어 가장 큰 객실인 ‘블루재’는 동북아 숙박공간 중 처음으로 에어비앤비 최상위 라인인 ‘럭스Luxe*’에 올랐지.
*에어비앤비가 호텔의 디자인, 고급 편의시설, 청결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고급 호텔에 부여하는 등급.
이걸 누가 기획했냐면 브랜딩 에이전시 ‘브랜딩컴’을 20년 넘게 운영한 박현구 대표야. 그가 브랜딩에 참여한 이름을 들어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쉬울 거야. SK디스커버리, LG휘센, HD현대, 하이원리조트, 하림의 자연실록, 쁘띠첼까지. 그가 클라이언트와 함께 고민하며 지은 이름들이지.
“브랜딩 전문가가 어떻게 ‘한옥 호텔’을 만들 생각을 했느냐”
그는 “절대적인 희소성을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판단하는 자신의 다섯 가지 사고법을 이야기했어요. 지관, 원천, 감수, 전진, 역전. 이 단어들을 붙잡고 쌓은 결과가 한옥 호텔이라는 겁니다.

노스텔지어를 대표하는 ‘블루재’의 모습. 100년 이상 된 한옥으로, 세월의 결을 품은 나무 천장을 보존하고 현대적 편안함을 더했다.
Chapter 1.
지관止觀 : 20년간 멈춰 서서 보는 법을 배우다
1971년생의 박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에 빠지면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파고들었어요. 초등학생 때는 우표를 모으려고 경기도 광명에서 서울 오류동까지 두 시간을 걸었습니다. 천체에 빠졌을 때는 부모님을 졸라 집에 망원경을 들이고, 나침반을 손에 쥐고 잤다고 해요.
이런 성향은 브랜딩 컨설팅과 잘 맞았어요. 2~4주간 하나의 브랜드 세계를 파고들어 솔루션을 제시하는 일이 즐거웠다고 합니다. 2002년 브랜딩 컴퍼니 브랜딩컴을 열고, 300여 개의 브랜드와 일했어요. 그에게 “24년간 무엇을 배웠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예상 밖의 답을 꺼냈어요.
“지관止觀. ‘멈춰 서서 보다’는 뜻의 불교 용어입니다. 일을 무작정 진행하는 게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서 본질을 살펴보는 법을 배웠어요.”

롱블랙과 인터뷰하는 박현구 대표. 박 대표는 브랜딩 24년의 경험으로 ‘잠시 멈춰 본질을 보는 힘’인 ‘지관’을 배웠다고 말했다. ⓒ롱블랙
Chapter 2.
원천源泉 : 절대적 희소성을 찾아야 한다
박현구 대표가 다음으로 배운 건 ‘멀리 내다보는 법’이었습니다. 멈춰서 생각하고 움직이다 보니, 좀 더 오래갈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금맥이 아닌 금광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조금 캐다가 동이 나는 곳이 아닌, 계속 캐도 마르지 않을 원천源泉을 찾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원천은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요. 박 대표는 “희소성을 따져보라”고 권합니다. ① 상대적 희소성과 ② 절대적 희소성이 있는데, 절대적 희소성을 쫓아야 하죠.
“상대적 희소성은 비교군이 바뀌면 그 희소성도 변하는 것입니다. 가령 핸드드립 카페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비하면 희소하지만, 망원동이나 성수동에 가면 비교적 흔해지죠. 치고 빠져야 하는 ‘타이밍’ 싸움을 해야 하는 주제가 많습니다.
절대적 희소성은 다른 것과 비교해도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타이밍을 잴 필요가 없죠. 제게는 한옥이 그런 절대적 희소성을 가진 공간이자 사업이었습니다.”
Chapter 3.
감수感受 : ‘손해 봤다’는 생각이 투자의 시작점이다
이 발견은 도전으로 이어졌어요. 서울 도심 속 프리미엄 한옥의 절대적 희소성에 믿음을 품고 한옥을 사들였어요. 2022년 4월의 일이었죠.
흥미로운 건, 그가 한옥을 하나둘 사들이자 주변에서 하나같이 말렸다는 점입니다. 세 채쯤 사자 거래를 주선한 공인중개사도 말리더랍니다. “돈이 안 될 거라”고요. 당시 팬데믹을 갓 벗어난 시점의 북촌은 그리 주목받는 입지가 아니었어요. 또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던 반면, 한옥은 10년 전이나 그때나 가격이 제자리걸음이었어요. 그럼에도 박 대표는 한옥 호텔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모든 투자의 시작은 손해라고 믿어요. 만약 제가 ‘손해 보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을 가졌다면 어떤 일에도 착수할 수 없었을 거예요.
갓난아이를 낳으면서 아이로 돈 벌려는 부모가 있을까요? 저는 브랜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무조건 ‘뭔가를 잃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죠. 한옥을 살 때도 ‘이걸로 빨리 돈 벌어야지’가 아니라, ‘이 희소한 걸 챙기는 사람이 없네? 그럼 미래를 위해 돈을 쓰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브랜드의 이름도 노스텔지어로 지었습니다. 한옥에서 느껴지는 ‘향수nostalgia’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Chapter 4.
전진前進 : 먼저 생각하고 행동을 쌓아야 한다
한옥을 손에 넣은 박현구 대표 앞에는 더 큰 숙제들이 있었습니다. 한옥을 실제 숙박 공간으로 구현해 내야 한다는 것.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도 적었어요. 그는 어떻게 상황을 풀어갔을까요.
“머릿속으로 늘 시뮬레이션을 돌립니다. 모든 상황을 상상하고 가정해요. ‘숙박객이 처음 북촌에 도착하면 어떤 동선으로 한옥에 오지?’ ‘그때 어떤 기분을 느끼면 좋을까?’
‘서칭searching 말고, 파인딩finding.’ 브랜딩을 배울 때부터 견지해 온 저의 지론이에요. 단지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생각하는 힘으로 의미를 발견해 내는 거죠.”
박 대표가 노스텔지어 팀원들과 ‘찾아낸 것’들을 물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① 얼굴을 마주하는 환대가 필요하다
노스텔지어는 ‘100% 대면 입실’이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가회동 초입에 있는 웰컴 센터에 들러, 직원 안내를 받아 숙소로 향해야 하죠.
“해외여행 가서 숙소 찾을 때 진이 다 빠지잖아요? 안 그래도 피곤한데 문자로 받은 안내를 따라 힘들게 숙소를 찾아가는 건 고급 숙소답지 않다고 봤습니다. 저는 ‘비대면 입실’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가 상상한 그림은 이랬다고 합니다. 손님이 웰컴 센터에 오면, 하얀 도자기 컵에 얼음이 동동 뜬 웰컴 막걸리를 건네받는다. 시원하게 한잔 마시고 나면, 직원의 도움을 받아 무거운 짐 없이 숙소로 향한다.
“상상한 그대로 현실이 됐어요. 사람이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브랜딩은 첫인상이 모든 걸 결정하니까요.”
② 우리만의 운영을 하는 ‘마스터’가 되자
박 대표가 또 하나 주목한 건 운영입니다. 단순히 ‘깨끗이 관리한다’는 게 아니에요. “우리만의 운영법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죠.
문제는 청소였어요. 2025년 기준 노스텔지어가 운영하는 여섯 채의 한옥은 전부 구조가 다릅니다. 더블재는 ‘ㅡ’자와 ‘ㄱ’자, 두 채의 집이 하나의 복도로 이어진 한옥이에요. 기존 호텔식 매뉴얼로는 청소가 어렵습니다.
“직원들과 청소의 기초부터 공부했어요. 가장 먼저 들어가면 뭐부터 치워야 할까.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침실, 욕실, 설거지, 바닥을 구석구석 시뮬레이션했죠. 처음에는 정해진 시간 안에 한채를 끝내기도 어려웠어요. 이제는 모든 한옥을 다 청소한 뒤, 두 번 더 둘러볼 정도가 됐어요.”
이때 떠올린 게 ‘마스터’ 제도입니다. 책임에는 권한이 따라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었죠.
“동료들이 자긍심을 느끼길 바랐습니다. 자칫 ‘청소만 하는 사람’, ‘짐만 날라주는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도록 이름부터 바꿨어요. 클리너, 포터 이런 이름이 아니라, ‘룸 마스터’, ‘웰컴 마스터’라고 부르는 겁니다.
역할도 재정의했어요. 룸 마스터는 청소만 맡지 않습니다. 입실할 때 흐를 음악을 고르는 일부터 풍기는 향까지. 내가 이 방의 경험을 기획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요.”
공들여 설계한 운영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차원이 다른 숙박 경험을 원하는 VIP들이 찾아왔습니다. 프리미엄 여행사들이 연락 왔고, ‘하루 숙박에 100만원 이상이라도 이런 경험을 주는 곳이 없다’고 소문났죠. 지금은 B2B 고객 비율이 30% 이상입니다.

노스텔지어의 웰컴 센터. 손님이 웰컴 센터에서 환대를 경험한 뒤 숙소로 향하도록 설계했다. ⓒ노스텔지어
Chapter 5.
역전逆轉 : 약점도 비틀 줄 알아야 살아남는다
박현구 대표는 강조했습니다. “사실 거침없이 노스텔지어를 키운 것 같지만, 수많은 위기를 넘어왔다”고. 그러면서 그는 노스텔지어가 경쟁력을 빼앗길지 모르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했어요.
1. 더 오래된 한옥이 있을 수 있다.
2. 더 큰 한옥이 있을 수 있다.
3. 더 비싼 오브제와 인테리어를 갖춘 한옥이 있을 수 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그가 떠올린 단어, ‘역전’이었습니다.
“역전逆轉. 복잡한 상황을 뒤틀어 버리는 관점의 전환입니다. 그것이 브랜딩의 가장 강력한 무기예요.
한옥은 주거용으로 보면 단점투성이에요. 가전제품을 설치하기도 어렵고, 지속적인 보수도 필수입니다.
하지만 관점을 뒤집어 볼까요? 어렵게 관리하는 만큼 진정성이 있는 공간, 일상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 복합 공간. 한옥은 그런 공간이에요.”
박 대표는 2024년 4월에 오픈한 ‘슬로재’를 언급했습니다. 슬로재는 노스텔지어의 숙박 공간 중 가장 번잡한 거리에 자리하고 있어요. 유동 인구가 많은 가회동 북촌로11길에 있죠.
“다른 공간은 조용하고 한적함을 줄 수 있는데 슬로재는 달랐어요. 바깥 소음이 잘 들렸고, 거리를 지나는 관광객들이 슬로재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죠. 소음을 역이용하는 방법이 필요했어요. 바깥소리를 잊게 할 정도로.”
그가 찾은 방법은 슬로재에서만 가능한 ‘몰입’이었어요. 6개월간 온갖 프로그램을 체험한 뒤 찾은 아이템은 ‘도예 수업’이었습니다. 물레 위를 빙글빙글 도는 찰흙. 그 위에 손을 얹는 순간 느껴지는 차갑고 미끈거리는 촉감이, 바깥 소음을 이겨 낼 거라고 본 거예요.
‘이거다!’ 싶었던 박 대표는 물레 두 개를 슬로재에 들였어요. 이곳에 묵는 손님은 누구나 전문가와 함께 도예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어요. 완성품은 가마에 구워 3개월 뒤, 손님이 해외 어느 지역에 있든 보냈고요.
거실 중앙에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도 설치했어요. 사람의 목소리와 움직임, 웃음소리를 감지해 그 파동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입니다. 숙박하는 동안 완성된 그림은 체크아웃할 때 룸마스터가 떼어내, 원통형 케이스에 담아 손님에게 전달해요. 이곳에서의 경험을 기억하게 하는 수단이죠.
“매번 도예 선생님을 부르고, 3개월 뒤 해외로 도자기를 보내고. 수고로운 건 맞습니다. 하지만 노스텔지어에서의 경험이 단 하나뿐인 경험이 됐으면 했어요. 손님들이 집으로 돌아가서도, 이곳에서의 고요함을 일상에서 꺼내볼 수 도록
Chapter 6.
북촌 혁신가들의 DNA를 이어 받겠다
노스텔지어를 3년 넘게 운영하면서 박현구 대표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북촌 헤리티지’를 계승하는 것. 이런 결심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브랜딩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북촌과 하이엔드 호텔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북촌은 꾸미지 않은 겸허한 선비가 떠오르는 지역인데 말이죠.’
처음에는 명확히 답하지 못했어요. ‘내가 북촌을 모르고 한옥만 보고 왔다’는 생각에, 저도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말씀 주신 것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북촌의 역사를 되짚어 본 박 대표, 이곳이 혁신가들이 살던 지역이라는 걸 발견했어요.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과 신진사대부 맹사성, 조선 후기 새 문물을 받아들인 북학파, 일제강점기의 개화파 김옥균과 독립운동가 서재필까지. 모두 북촌의 주민들이었습니다.
“북촌은 집안 대대로 내려온 부자들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다른 세상에도 눈을 뜨고 연구한 혁신가들의 터였어요. 즉,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도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죠. 이걸 알아내면서 저도 확신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자신을 갖고 헤리티지를 이어가면 되겠다고요.”
2022년 8월에 문을 연 히든재도 이 맥락이 담겨 있어요. 한옥에 들어서서 공간 끝까지 가면 회반죽으로 바른 동굴이 나와요. 독서를 하거나,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실은 일제강점기 때, 폭격을 피하려 만든 방공호죠. 역사를 숨기지 않고 휴식 공간으로 바꾼 겁니다.
“단순히 옛것을 지키자고 외치지 않으려 합니다. 원형은 지키되, 한 발짝 나아가자는 거죠. 저는 한옥에 북유럽식 미드센추리 가구가 놓일 수 있고, 유리문이 달릴 수 있다고 봐요. 중요한 건 과거의 지혜와 현재의 필요가 의미 있게 만났느냐는 거죠. 전 여기에 절대적 희소성이 있다고 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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